2018/11/26 23:09

최진영, 해가 지는 곳으로 [오늘의 젊은 작가 16] 책도 읽고,


언제나 무슨 일이 있어도 날 사랑한다고 말하는 A가 어느날 내게 책 한 권을 쥐어줬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책은 이미 내가 도서관에서 열심히 빌려다가 한창을 읽고 있던 책이었다. 
책의 제목도, 소개글도 모두 마음에 쏙 들어서 집어 들었던 책. 
나를 사랑하는 그녀가 준 깜짝 선물엔 역시나 편지가 함께 있었다. 
'이 책은 세상이 개짱이라고 말하고 있고, 개짱인 사람과 가장 잘 어울리는 개짱인 너에게 주고 싶었어.' 라는 문장이 인상 깊었다.

죽는 순간 나는 미소에게 무슨 부탁을 할 수 있을까. 사랑해. 사랑을 부탁할 것이다. 내 사랑을 부탁받은 미소는 어떻게든 살아남을 것이다. 사랑을 품고 세상의 끝까지 돌진할 것이다. 

사랑을 품고 세상의 끝까지 돌진할 것이다, 라는 말은 책의 소개글이었다. 거부할 수가 없게끔 하던 그 마법 같던 문장은 내 삶의 철학과 정확히 일치했다. 사랑은 어떻게든 나를 이끌어 가고, 내게 길을 만들어 주며, 그렇게 사랑하다 보면 살아갈 수가 있었다. 지금도 그렇고. 
그러나 너무나 로맨틱한 이 문장과는 다르게 <해가 지는 곳으로>는 사랑의 잔혹한 이면에 대해 이야기한다. 
왜냐하면 사실 사랑이란 이루어지지 않아서, 계속해서 이어지고, 이어나가지 못하면 살지 못하게 되니까, 살아남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다. 
그래서 세상의 끝까지 돌진해야만, 그게 사랑이다. 

이 책의 모든 인물들은 그래서 그렇게 사랑을 한다. 사랑을 하며 앞으로 나아가고, 사라진 일상이라던가 삭감된 평범함은 잠시 제쳐둔 채 미친듯이 돌진한다. 의심이나 질문은 사치가 된 현실이기 때문이다. 건물은 없고, 사람들은 죽어 나가고, 국가나 지역과도 같은 경계들은 사라졌다. 사람은 사람이 아니고, 짐승도 짐승이 아니다. 그런 곳에서 그렇게들 사랑을 한다. 
그것이 그들이 계속 나아가는 유일한 이유라서. 

사랑이 만들어 낸 엄청난 추진력이나 희망은 이런 문장들에서 진하게 나타난다. 

그런 게 지나의 희망일지도 모른다. 국경을 넘거나 벙커를 찾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희망. 과거를 떠올리며 불행해하는 대신, 좋아지길 기대하며 없는 희망을 억지로 만들어 내는 대신 지금을 잘 살아 보려는 마음가짐. 
불행이 바라는 건 내가 나를 홀대하는 거야. 내가 나를 하찮게 여기고 망가트리는 거지. 난 절대 이 재앙을 닮아 가진 않을 거야. 재앙이 원하는 대로 살진 않을거야.  

제 이름을 부르면 맑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지나. 그 눈을 볼 때마다 나의 눈빛이 궁금했다. 나는 어떤 눈빛으로 너를 바라볼까. 어떤 눈빛이기에 너는 나를 보고 미소 지을까. 

어떤 불행이 닥쳐도 '사랑'이 있으면 바보같은 희망도 눈빛 한 번도 중요하다. 필요하다.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것은 바보가 아니다. 사랑일 뿐이다.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내가 그렇게도 열심히 혹은 아무렇게나 살면서도 절대 놓지 않는 문장이다. 

칭찬과 위로, 오늘은 어땠어? 키가 이만큼이나 컸네, 안아주고 사랑한다 말하는 것, 오늘을 기억하고 내일을 기대하는 것,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 잘 자라고 말해주는 것. 

작가는 말한다. 언젠가 인류가 멸망하더라도 우리는 사랑을 할 것이고, 사랑은 남는다고. 

영화 <세상의 끝까지, 21일>을 너무 좋아한다. 
생의 마지막에는 사랑을 할 것이라는 게 너무나도 내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도 좋다. 사랑은 무조건 남는 것이고, 내가 사랑하는 A의 말처럼 사랑은 개짱이니까. 
그래서 이 책을 추천한다.

2018/10/31 22:22

자기 전에 감사한 것 적기 혼자만 볼 수 있는 일기도 쓰며,

당신이 저를 좋아해주어 다행입니다. 웃지 않는 얼굴 속에서 답답함이 가끔 생겨나도 언젠가 내 시덥지 않은 농담이나 아무렇지 않은 듯 던지는 마음들 속에서 당신이 꼭 한 번은 웃어줄 것에 감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당신은 내 기대에 응해주고, 그런 순간들을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않을테니까 그게 그렇게도 감사합니다. 내가 당신을 꼭 행복하게 만들수가 있을테니까, 그런 마음이 제게는 위로가 되고, 그럼 나는 이 위로를 또 다른 이들에게 전하고 싶고요, 그렇게 되면 우리 모두 행복해질 수 있을겁니다. 때로는 말도 안되는 시기 질투 우울 멍청함이 우리를 뒤덮어도요, 우리는 마침내 벗어내리라 저는 감히 함부로 장담하고 싶습니다. 큰 소리를 치며 도망치던 것들도 결국은 돌아올 거라고 굳게 믿으면서 어제 잠에 포옥 잘 든 것처럼 오늘도 그렇게 깊은 잠에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2018/10/30 22:07

스타 이즈 본 (A Star Is Born), 레이디 가가 그리고 브래들리 쿠퍼 영화도 보고,



오랜만에 영화관에서 두 번을 본 영화가 생겼다. 스타 이즈 본.
층간 소음에 시달리고, 끊임없이 무언가 혹은 누군가를 신경 쓰고, 이유 없는 우울이나 무기력에 자꾸 뚝 뚝 하루가 끊기고, 꿈이 없어 무가치한 것들을 아무거나 주워담던 차에 보게 된 영화였다.
그러나 영화의 초반부에서 그런 생활 속에서 쌓아왔던 벽들이 와르르 무너졌다. 슬립 차림에 얇은 눈썹을 붙이고 장밋빛 인생을 노래하는 앨리와 그녀를 바라보는 잭슨을 보면서 ‘과한’ 감정을 오랜만에 느꼈다. 앨리가 빤히 바라보는 장면엔, 꿈이라도 꾸는 듯한 느낌이었다.
예전부터 나는 가가를 ‘그냥’ 좋아했다. 노래든 춤이든 외모든 그녀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든 무엇이든 좋아했다. 대체로 내가 지향하는 것들과 잘 맞았고, 모든 것을 알지 못하여도 간간이 접하는 그녀의 문장들이나 음반은 아름다움과 가까웠다.
게다가 어린 시절 가가의 내한 공연을 보았을 때를 잊지 못한다. 나는 2층 뒷자리에 앉아 틈나는대로 멀리 무대 위 그녀를 힐긋대며 스크린 속 클로즈업된 그녀의 얼굴을 뚫어져라 눈으로 담곤 했다. 그러다가 나는 눈을 감고 그녀의 노래를 들었다. 그 순간이 내겐 가장 그녀가 가까이 다가왔고, 잘 보였으며, 마음을 울렸던 순간이다. 진짜 아티스트가 있다면 그게 바로 가가일 것만 같았다.
어쨌든 예술과 가장 가까운 사람인 그녀가 나를 빤히 바라보는것만 같던 그 장면엔, 잭슨이 앨리가 자신의 출구일 수 있음을 직감했듯이, 나도 이 영화가 내 출구일 수 있음을 직감했다.
앨리가 ´shallow’를 부르는 장면을 처음 볼 땐 그냥 가사가 슬퍼 눈물이 났다. 공허함이나 불행함을 채우기 위해 계속해서 자신을 소비하고 하드코어로 끌고 나가는 수많은 내 가족이 떠올랐다. 내가 떠올랐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떠올랐다.
두 번째 볼 땐 내가 지금 처한 상황 자체가 얕은 곳(shallow)임을 깨달았다.
내 몸을 내던질만한, 깊은, 그러나 바닥에 부딪히지 않고, 우리 모두 다치지 않는 절벽이라도 만들어 줄 만큼 사랑하는 무언가를 지키거나 만나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얕은 곳에서 벗어나 마음껏 뛰어들 수 있는 어떤 곳. 그러기 위해선 계속 무언가를 말하고, 느끼며, 기다리고 지켜보아야 하는 것이다.
두 번째 관람을 함께 한 친구는 둘이 그 어떤 고민도 문제도 없이 행복하게 노래하던 장면이 제일 좋았다고 말했다. 그것이 바라던 둘의 모습이었다면서.
나 또한 그랬다. 앨리가 말한 것처럼 둘이 그 모습 그대로, ‘이 모습 이대로 기억하자’던 모습 그대로 살기 위해선 뭘 어떻게 해야 했을까, 몇 번을 돌리고 재생하고 고민해보았다.
그러나 형의 말처럼, 그리고 어느 글에서 본 문장처럼, 그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닌 그 자신의 잘못이고, ‘만약에’라는 말은 너무 슬퍼서,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잘은 모르겠다.
세상의 모든 일은 돌릴 수 없는 일들이다. 탄생이든 죽음이든, 그래서 하나 하나 다 너무 소중하고 숭고하다. 끊임없이 기억되고 이야기되는 한, 끝도 끝이 아니니 살아가는 날 동안에 최대한 많은 사랑을, 기쁨을, 행복을 기억하도록 해야겠다.


2018/10/27 22:29

'어둠 속의 빚쟁이처럼' 혼자만 볼 수 있는 일기도 쓰며,


재빨리 해치우려고 하는 것들은 대개 수포로 돌아간다. 그래서 실패한 일들이 현재 내 주위에는 수두룩하며, 무시해보려고 팔로 밀어버리고 발로 차버려도 금세 다시 내 앞에 모여 거대한 벽이라도 만들어 댄다. 세워지는 벽들 앞에 나는 그냥 주저앉곤 하는데, 이상하게 주저앉아 버리면 조용히 사라진다. 오늘 급히 반납해버린 시집에 있던 표현이 생각난다. '어둠 속의 빚쟁이처럼.' 의기양양하거나 자신감이 넘칠 땐 무조건 실패했던 일들이 머릿 속에 '어둠 속의 빚쟁이처럼' 다가오는 것이다. 내게는 그런 것들이 허락되지 않은 양 말이다. 뭐, 상관없어. 나는 어차피 그럴 일이 별로 없을테니.
1
어쩔땐 말과 글을 뱉다가도 두렵다. 아, 이러다가 정말 굳어버리려나. 그러면 억지로라도 이 마이너스의 때들을 벗겨내야 한다. 마치 파라핀 용액처럼 조금만 닿아도 하나의 껍질이 생겨나는 것처럼 말이다, 마이너스의 때들은
무서운 것이다. 게다가 그 껍질은 일단 생기고 나면 편안하다. 사람들이 자기 합리화나 자기 연민, 그리고 자의식 과잉을 멈추지 못하는 이유다. 그건 너무 쉽다.
2
'그래두, 고마워.'
그래도도 아닌 그래두를 나지막이 중얼거리던 그 사람은 정확히 콤마와 마침표를 지켜냈다. 그 정확함 속에는 세상 누구에게나 이로울 다정함이 잔잔히 담겨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 중얼거림을 들었다는 사실에 기뻤다. 기쁨을 주워 듣는 하루.
3
근데 내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나? 아니, 절대 아니다. 모든 것은 정말 잘 될 것이다. 살짝은 거짓말일지 몰라도.
4
그러나 어쩔 때는 거짓말이 진짯말 같고, 진짯말이 거짓말 같다. 그것은 지속성의 개념과 자주 연결되곤 한다. '너 그 순간엔 내 행복을 마음 깊이 진심으로 빌었다지만 지금은?' 그러니까 지속성이 없으면 모든 진실이 거짓이 되고 만다. 나는 지속성한테 늘 진다. 모든 건 거짓말일 때가 가끔은 있다. 우리 모두 무엇 없이도, 무엇과 함께도 살 수 있다. 


2018/10/27 15:38

Fuji 도 아니고 Huji 인 필름카메라 어플 사진을 찍는다.















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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