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3/27 19:37

질문들 탈탈탈

자꾸 행복하니까, 생각이 퇴보한다.
그래서 행복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된다.
소라언니가 트와이스 노래를 부를 수는 없는데.
비가 내리는 날에 일광욕을 할 수는 없는데.
부처님 오신 날에 크리스마스 파티를 할 수는 없는데.

2018/03/27 12:20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길예르모 델 토로. 보고 쓰기


랑은 어디에나 네가 공기처럼 퍼져 있는 것과 같아서, 물의 모양이 정해져 있지 않은 것처럼 너와 나, 우리, 그러니까 사랑은 곧 형체 따위 없는 절대적인 것.
태어나 본 영화 중에 가장 아름다운 주제를 가진 아름다운 영화.
서사 방식 조차도 아름다웠다. 남성 중심의 서사를 보란 듯이 깨부수는 영화였기 때문에! 일단 말을 할 수 없는 장애를 가진 여성이 자기 인생 야무지게 잘 산다. 그러다 거대한 감정을 느끼게 되고, 그 감정을 고스란히 감내해내며 누구보다 용감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우리도 인간이 아니라는 대사는 인생 내내 새기고 싶다. 어쩔 수 없다, 는 말은 정말 거짓말이다.) 자신과 자신의 사랑을 위해 나아간다. 그 어떤 연민도, 착취도, 어려움도 관객인 우리가 구태여 느낄 필요가 없다.
또, 정말 잘생기고 예쁘지 않더라도, 아니 하다 못해 인간의 형상을 하지 않은 존재들이라도 라라 랜드의 남녀 주인공처럼 서로 사랑한다고 노래 부르며 춤을 출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했다. 늘 시나리오를 쓸 때마다 내가 지향하고자 했던 바를 정확히 실현해낸 영화를 봤다는 건 진짜 엄청난 기쁨이다. 나는 이렇게 못 만들 테니 관객으로라도 이런 기쁨을 느꼈다는 사실은 꼭 기록해 놔야 한다.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판타지, 동화라는 요소의 당위성을 위해 일부러 구체적인 시공간을 설정한다는데, 난 그 점이 소름 끼치게 너무 좋았다. 결핍이 있어야만 간절한 도피가 가능하니까. 폭력적인 시대와, 그에 딱 알맞게 혐오와 차별로 가득 차 있는 기득권 지배 계급에 맞서는 네 명의 인물들이 모두 살아 있었다.
말을 할 수 없거나, 성 소수자 이거나, 피부색이 다르거나, 국적이 다른 것. 그 모든 것을 떠나서 말이다. 젤다의 말처럼 ‘너’는 정말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할 수 없을 서로 ‘돕는다’는 그 행위들은 아직도 막 심장이 떨릴 정도로 너무 감동적이었다. 다시 한 번 써두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우리도 인간이 아니다.” 나를 인간으로서 생각하지도 않는 존재들을 위해서는 먼지 한 톨도 치워줄 수 없으나, 나 자체가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고 항공 우주센터의 괴생물체라도 꺼내올 수 있어야 한다.
결핍을 가진 존재가 또 다른 방식으로 결핍을 가진 존재를 만나 서로에 대한 연민과 호기심으로 손을 맞잡고, 끌어안고, 일상을 나누고, 상대방이 전혀 상상도 못할 거라고 감히 확신할 만큼의 사랑을 느끼는 일.
너무 기적과 같은 일이다.

2018/03/08 22:58

내가 계란 먹는 것 보여줄게. 탈탈탈

그렇게 말하더니 연신 후라이팬에 가득 담긴 후라이와 참치, 유부초밥을 입에 밀어넣는 너였다.
처음에는 얘가 뭐하는 건가 싶어 한참을 쳐다만 보다가, 나도 모르게 울고만 싶었던 기분과 복잡한 생각들이 사라졌다는 걸 깨달았다.
계란 먹는 것으로 나를 그렇게 순식간에 "괜찮아"지게 한다. 바보같이 웃게 하고, '그래, 이게 다 뭐야. 다 괜찮아.' 라는 생각으로 가득차게 한다.
그래서 그렇게나 그게 너무 슬프고 사랑스러웠다. 어쩜 이렇게 쉽게 괜찮고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이제야 알아서 슬프기도 했고, 그걸 알게한 너와 너가 먹는 계란이 참 사랑스러웠다.
너가 먹고 있는 모습을 핸드폰 속 화면으로 보고 있자니 괜히 배가 고팠다.
그런데 사실 너랑 있을 때는 배도 안 고프다.
그래서 먹다, 라는 행위 자체도 낯설다.
배 고플 새 없이 바삐 웃고 바삐 말하고, 그러다 보면 하루가 그냥 막 간다.
너와의 통화를 끊고 괜히 밥을 말아 먹는데 피식 웃음이 났다.
분명 그 전에는 울고 있었는데 먹는 걸 보고, 먹고, 웃었다.
삶이 이렇게 쉽구나. 살 만 하구나. 살 것 같네. 싶었다.

2018/02/13 23:15

짐 자무쉬의 패터슨, 에 사는 패터슨,의 이야기. 보고 쓰기

어떻게든 살아내는 삶 속에서도 시가 되는 순간들이 있다.
같은 시리얼, 같은 아침, 같은 사람, 같은 개, 같은 바에서, 어느 날은 너무 행복하고, 어느 날은 너무 불행하기도 하다. 그리고 그 때 느끼는 감정들은 느끼는 순간에도 변화한다.
그 어떤 날도 반복될 수 없고, 같을 수 없다.

자꾸만 반복되는 삶에 약간의 권태를 느낄 때 즈음 보게 된 영화였다.
어쩌면, 이제 뭔가 조금은 새로운 감정이나 순간들을 마주하게 될 수도 있겠다, 그리고 그 순간들이 나중에 돌아보아도 얼굴이 찡그려질 정도로 망가질 일은 절대 없겠다, 싶은 시기이기도 했다.
자꾸만 닫히는 자동문을 구태여 버튼을 마구 눌러가며 억지로 열어 두는 듯한 느낌으로다가. 언제든 그 문 안으로 뛰어 들어갈 준비를 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반복이란 없고, 그 반복안에서 보잘것 없는 성냥도 화려한 불꽃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을 누구나 가질 수 있겠다는 희망을 얻었다. 아주 오랜만에 희망이란 단어를 떠올렸다.
여러 번 머릿속에서 굴려본 결과, 받아들일 가치가 충분히 있는 단어라고 생각이 됐다.
이건 오로지 패터슨, 그리고 짐 자무쉬 덕분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들기는 했으나 그래도 여전히 좋은 영화이다.
호들갑 떨지 않았고, 그래서 나도 호들갑을 떨 수 없었으며, 조용히 받아들이며 여러 번 다시 생각해보고 느껴보고 상기하기에 딱 좋은 영화이다.

애버렛을 보며 신현림 시인을 떠올리게 된 것도 덤으로 좋았다.
패터슨을 제외한 다른 인물들도, 몇 컷 지나지 않아도 조용하게 내게 다가오는 느낌이 강렬했다.
누군가의 죽음이나 희생, 엄청난 감정의 폭발, 대단한 사건이 없어도 소소한 일상들로 똘똘 뭉친, 내게는 정말 너무 소중한 걸작이다.

2018/01/24 23:51

아무것도 모르겠다. 탈탈탈

모든 걸 알고있다고 생각하던 때도 있었는데, 아무것도 모르겠다.
누군가가 자꾸 떠나거나 죽고, 마음이 자꾸 식거나 사라지기만 하니까 아무것도 모르겠다.
뭔가 대단한 것들을 하고 싶었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사실 대단한 게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꿈이니 사랑이니 열정이니, 사실 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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